성수기 벌써 끝났다고?… 무역 전쟁에 침몰하는 해운시장

트럼프 관세 직격타… ‘밀어내기 수출’ 끝나자 수요 얼어붙어

전문가들 “지난 10년간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 장기화 우려”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보호무역 강화로 글로벌 무역 성장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해상운송시장 또한 함께 둔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관세가 본격 시행되기 전에 이를 피하기 위한 ‘밀어내기 수출’이 조기 선적되며 컨테이너 수요를 떠받쳐왔으나, 본격적인 관세 부과 시행이 이뤄지면서 수요가 급락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으로의 컨테이너선 수입 행렬은 260만9000TEU에 달해 전월 대비 18.2%(전년 대비 2.6%)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중 관세전쟁 휴전 마감일이 임박한 가운데 중국·홍콩발 화물이 각각 44.4%·47.8%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올여름 컨테이너 운송 수요가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내다보며 올 하반기에는 트럼프발 고율 관세의 본격 시행으로 인해 컨테이너 화물 운송 수요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본래 연간 해운수요가 피크를 찍는 성수기는 7~9월의 3분기지만, 올해는 관세로 인해 이 기간이 당겨지면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판매 부진 속 수입품 재고 급증 

 

미국의 7월 수입물동량 급증은 관세 협상 시한 연장과 8월의 국가별 상호관세 시행, 미중 관세 휴전 만기와 맞물린 것이었다. 미국 내 수입상품 재고는 관세 부과 전 조기 선적으로 인해 빠르게 쌓여갔다. 이에 화주들은 상황을 관망하며 선적을 보수적으로 늦추는 분위기다. 특히 태평양 항로에서 수요 전망이 뚜렷하게 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유통업체들은 기존 창고에 재고를 선제적으로 반입한 뒤 수입품 주문을 줄이고 신규 창고 임대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의 창고 공실률은 올해 2분기 7.1%로 2014년 이후 최고치를, 전대(sublease) 물량은 2억2500만 제곱피트로 역대급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소매협회(NRF)는 관세 유예 마감 임박과 노동력 우려로 인해 화주들이 선적을 서두르면서 공급망에 재고가 과잉 공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수입수요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올해 미국의 연간 수입이 전년보다 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관세전쟁 휴전을 11월까지 90일 더 연장하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율을 30%, 중국으로 가는 미국산 수출품에 대한 관세율을 10%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올해 초 발표된 세 자릿수 관세율이 적용되며 양국 간 무역이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를 막았지만, 화주들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미국소매협회의 공급망 및 관세정책 담당 부사장인 조나단 골드는 이것이 관세가 공급망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가 소비자 물가를 상승시키기 시작했고, 수입이 줄어들면 결국 매장 진열대에 있는 상품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 통계에 따르면 1분기 미국 내 상품 소비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실질 상품 수입은 50% 이상 급증했다. 캐나다 제조업 매출 대비 재고 비율도 1.66에서 1.75로 상승했고, 유로존 또한 판매가 정체되는 가운데 재고만 증가하면서 향후 수요 둔화 신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폭락하는 운임, 심하면 반 토막

 

실제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예고한 주요 국가별 상호관세의 본격적인 시행이 8월부터 이뤄지면서 해운 물동량 감소는 가시화되고 있다. 

 

해운시장 분석업체 시인텔리전스는 상반기 ‘인위적 호황’의 급반전(whiplash) 하락 위험을 경고했다. 올해 1~4월 미국 동·서안 상위 10개 항만 수입물동량은 전년 대비 15.6% 늘어 팬데믹 이전 최고치인 8%를 크게 웃돌았으나 해상운송 물동량과 운임의 하락은 하반기 들어 가시화되고 있다. 

 

글로벌 해상운임을 가늠하는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하반기 들어 하락세가 지속되며 8월 들어서는 1400대로 주저앉았다. 이는 2024년 SCFI의 연중 최저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관세청이 발표한 7월 원양항로의 수출 해상운송 비용은 미국 서부행이 2TEU당 553만9000원, 미 동부행이 640만2000원, 유럽연합(EU)행이 400만2000원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EU행 운송비는 전년 동월 대비 증감률이 -48.2%에 달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2023년 말 예멘의 후티 반군이 가자지구 종전을 촉구하며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 위해 홍해를 항행하는 상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선사들이 아프리카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면서 동아시아에서 EU로 향하는 운송비는 급등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멈추도록 압박하고 홍해에서 상선을 공급하는 후티에도 압력을 넣으면서 홍해발 물류 리스크는 완화되는 추세다.

 

글로벌 5대 컨테이너선사인 독일의 하파그로이드는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3.1% 감소했다고 최근 보고했으며, 홍해 긴장 등 지정학적 문제와 미국 무역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연간 수익 전망치 상단을 하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하파그로이드는 올해 하반기 컨테이너 수요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파그로이드의 상반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한 7억9900만 유로인 것으로 발표됐으며, 그 직후 이 회사의 주가는 9%까지 급락했다.

 

우리나라 국적선사인 HMM 또한 지난 2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급감했다. 연결 기준 매출이 2조622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2332억 원으로 무혀 63.8%나 감소했다.

 

●“2029년까지 해운 과잉공급 지속”


근래 들어 신규 컨테이너 선박 주문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해운시장 ‘공급과잉(Overcapacity)’을 경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해운 데이터업체인 라이너리티카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컨테이너선 발주물량이 1040만TEU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현재 선대 대비 주문예약 비율도 31.7%로 201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라이너리티카는 발주물량 비율이 현재의 수준을 넘어선 마지막 기간은 2004~2009년이었다며 “당시 10년간의 공급과잉이 발생해, 이를 해소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컨테이너 선복량 증가 속도가 수요 증가를 계속 웃돌면서 “공급과잉은 2029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8월 들어 태평양 항로 물동량 감소와 화물 예약 정체, 9월 반등 신호 부재를 지적하며 조기선적의 반작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해 3분기의 해운 성수기가 이미 6~7월에 지나갔다는 것이다. 글로벌 물류서비스업체 퀴네앤드나겔 또한 8월 성수기를 ‘약세’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약 100만TEU의 선복량이 추가 공급될 전망인 가운데 공급과잉과 함께 해운시장 변동성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26년까지 컨테이너선 선복량은 2019년 수준보다 4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화물량은 22%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해운 전문 분석가들은 2028년까지 연평균 약 27%의 공급과잉이 이뤄지면서 수익성이 바닥을 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선사들은 항해 속도 조정, 구형 선박 폐기, 임시결항(Blank sailing) 등의 조치로 공급 조정에 나설 예정이다. 

 

출처: 한국무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