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도 높고 변동성도 크고… 내년 외환시장 전망도 비슷
올해 외환시장서 원화 가치, 금융위기 이래 ‘최악’ 기록
불확실성 커서 내년 전망도 어려워… “제한적 상고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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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최저치에 달한 가운데 연평균 환율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환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변동성까지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1월 14일까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연평균 환율은 달러당 1415.28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인 지난 1998년(1394.97원)을 넘어선 역대 최고치다.
또한, 국제결제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1~9월 원화의 평균 실질실효환율은 90.87을 기록하며 기준선인 100을 상당 폭 밑돈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86.96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올해는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와 대만달러 가치 폭락이 있었던 봄에 연고점(4월 9일 장중 1487.6원)을 찍으며 원화 가치가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신정부 출범 직후 연저점(6월 30일 장중 1347.1원)까지 급락했던 것이 4분기 들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며 다시 연고점에 근접하고 있다.
4분기 원/달러는 10월 2일 장중에는 달러당 1399.5원까지 내려갔던 것이 11월 13일에는 장중 1475.4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한 달 보름 새에 환율이 달러당 75원 이상 오른 셈이다.
다만 14일 한미 무역협상 팩트시트가 발표되고 정부가 환율 안정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오름세는 주춤하는 모양새다.
●외환시장, 환율 상승 요인 다수 작용
지난해 말 비상계엄 선포와 정치적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연초부터 높은 수준과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여기에 최근 환율 급등의 배경에는 미국 관세 정책과 셧다운 등 대외 요인들이 다수 꼽히고 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고강도 관세·환율 정책을 활용하면서 관련 논란이 이어져 환율 변동성이 확대됐다. 또한, 올 하반기 들어 달러화에 대한 단기 조달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점도 달러 강세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주요 경제지표가 혼조세를 보이면서 연준발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원/달러 환율 불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주요 지표 발표가 지연되거나 해석이 어려워지면서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저하됨에 따라 추가적인 불확실성이 예고됐다.
엔화 약세도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추가 재정지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본래 원화는 위안화와 동조화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올해 하반기에는 엔화와의 동조율이 높아졌다.
아울러 위험회피 심리 및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다시 높아지고 있어 달러화 강세 및 원화 약세가 촉발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AI버블 경고 등 위험자산 가격 고평가 논란과 함께 안전자산 수요 확대가 달러화의 추가적인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미 간 금리 차의 경우 최근 3년간 환율 고공행진의 주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한국은행은 5월 기준금리를 2.50%로 인하한 후 10월까지 동결을 유지했으며, 현재는 미국의 9~10월 연속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금리 차가 1.25~1.5%p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전문가들은 올해 환율 고공행진의 국내적 배경으로는 해외투자 급증을 지목하고 있다. 우리 자본수지를 보면 2025년 1~2월 증권투자에서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가 257억 달러 급증하며 대규모 순유출이 발생했고, 외국인투자자금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1월까지 5개월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원화 약세 기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한미협상서 외환시장 안정성 강조
여기에 외환당국의 개입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장의 관측도 환율 상승을 자극했다.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우려에 따른 외환보유고 소진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환율 합의로 인해 우리 외환당국은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기 어려운 여건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당국의 개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정부는 한미 무역합의 팩트시트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조항을 안전장치로 마련해놨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미 투자 자금 200억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달러를 매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팩트시트에 명시했다. 정부가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조달할 경우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달러 직접 매입 대신 외환보유고 운용 수익을 통해 연간 200억 달러를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약 4220억 달러 규모며, 정부는 매년 수익률을 5% 수준으로 가정하면 충분히 감내 가능한 범위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팩트시트에는 연간 200억 달러 투자 이행으로 원화의 비정상적인 움직임 등 시장 불안정이 발생하면 투자 시점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됐다.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이유로 투자 시기를 늦추거나 규모를 낮추겠다고 요청한다면 미국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이를 검토해야 한다.
한미 팩트시트에 담긴 ‘외환시장 안정성’ 조항은 미국과 다른 나라의 상호관세 협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항목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에 관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이를 축소하겠다는 의미”라며 “대통령 간 합의된 팩트시트에 올라가 있는 만큼 양국 정상이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투자 증가, 환율 하락 폭 제약”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외환시장 변동성이 클 것을 전망하면서도, 원/달러가 제한적으로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DS투자증권은 내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년 환율 평균값으로 달러당 1406원을 제시하면서 “저성장, 재정지출 확대, 잠재성장률 하락 등 다양한 원인과 해외 자산 투자 확대 기조 지속으로 원화 수급 불균형이 계속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 전문 이코노미스트인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2026년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무역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달러화의 ‘상고하저’ 흐름을 제한적으로 따를 것”이라며, “해외투자 확대로 인한 구조적인 달러 수요가 환율 하락 폭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내년도 전망에 따르면 우리 외환시장은 계속해서 높은 변동성을 보일 예정이다. 11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6년 세계경제 전망’ 브리핑에서 윤상하 KIEP 실장은 원/달러 환율 전망에 대해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짚었다.
내년 원화 가치는 글로벌 달러 약세와 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입으로 완만한 강세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나, 가계부채 등 구조적 제약 요인과 미국 관세 효과의 본격화가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는 일단 수출이 개선되고 있는 부분은 확실히 환율이 안정되는 요인이라며 “경제성장률 개선을 생각한다면 환율이 안정세로 내려갈 것이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면서도 “그럼에도 금융 요인이 요즘은 워낙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많이 내려갈 것이라고 쉽사리 말씀은 못 드릴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최근 해외 증권투자가 많이 늘어난 부분은 구조적으로 환율 하락을 제약하는 요인”이라며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고 전략적 환헤지를 중단한 부분 등도 있어서 과거처럼 수출이 잘 돼서 원화가 강세가 될 거라는 논리는 앞으로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얘기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국채 금리와 환율이 동반 급등하고 있다며 “국내 혹은 해외 경제의 펀더멘탈 악화 혹은 신용리스크보다 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인한 자금 흐름상의 일시적 변화 때문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며 “금리정책 전환 기대감에 따른 국채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라는 자금 흐름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점차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연방정부 활동 재개와 더불어 미 연준의 금리 통제 정책 추진 등이 결국 단기 자금시장의 경색 현상 완화로 이어지면서 국채 금리 안정은 물론 달러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유가 하락세도 글로벌 국채 금리는 물론 국내 국채 금리와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처: 한국무역신문







